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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 노수석 열사의 장례투쟁을 마치고 곧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 출발이 되었던 고발과 민사소송과정을 정리합니다. 1. 고발1996년 4월부터 연세대 학생들의 서명을 받아 서울지방검찰청에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고발하였고 검찰은 무혐의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항고하였으나 1997년 1월 서울고등검찰청은 혐의가 없다며 항고를 기각하였다. 종전 이한열, 강경대 열사 사건 등과 같이 경찰 가해자가 명백히 드러난 경우 외에는 처벌한 예가 없으므로 더 이상 검찰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해 대검찰청에 재항고를 포기하고 민사소송에서 진실을 밝히기로 하였다. 2. 민사소송 제기 1) 1심 (원심) 1998년 2월 13일 국가를 상대로 유가족이 이덕우 변호사를 대리로 손해배상청..
4월 11일 서총련, 진상조사 요구 단식농성 시작4월 11일부터 ‘노수석 열사 사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총련 구국 단식단’(단장 문병두, 연세대 법대 94)의 단식이 시작되었다. 단식은 4월 19일까지 계속되었다.농성장 모습 (1996년 4월 16일 한양대신문) 당시 발행된 학생대책위 유인물 4월 12일 연세대, 학교측 입장 한겨레 신문에 게재 당초 학교 당국은 ‘11일에 조선, 동아, 중앙, 한국, 한겨레 등 5대 일간지를 통한 성명서 발표’를 약속했으나 이를 어기고 한겨레 신문에만 성명을 발표해 또다시 학생들과의 약속을 어겼다. 특히 학교 당국에서 발표한 성명서 옆에는 4월 8일부터 10일까지 8,021명의 연세대 학생들이 모금한 4,325,900원으로 낸 광고가 실렸는데, 학생들의 광고..
3월 31일 부검실시오전 10시 30분부터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김시진의 지휘로 국립과학수사 연구소 법의학과장 등 4명이 6집도한 가운데 부검이 실시되었다. 부검에는 연세대 법의학 조상호 교수, 고려대 법의학 황적준 교수, 국립의료원 이승철 신경외과 전문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소속 의사 양길승, 노수석의 당숙인 의사 노광을, 변호사 이덕우, 학생대표와 유족 6명, 한겨레와 연합통신 기자 2명, 서울지방 경찰청 형사과장 김판근과 중부경찰서장 최관현 총경 등이 참석했다.부검 결과, 전체 7군데에서 피하출혈이 발견됐고 심장이 다소 무겁고 비대확장되어 있었음이 발견됐다. 부검의들은 외상이 있으나 직접 사인으로 보이지 않고 심장이 비대 확장된 것으로 보아 심근증이나 심근염..
노수석 열사의 아버님1996년 3월 30일 한겨레1996년 3월 30일 중앙일보 3월 30일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요구 집회 잇따라연세대 내 곳곳에 노수석 열사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열사의 사망에 대한 각계각층의 입장이 발표되었다. ■ 한총련 기자회견 오전 10시30분 한총련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은 총선을 앞두고 청년학도들의 투쟁의지를 꺾으려는 김영삼 정부의 폭력진압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총련은 “여러 가지 정황이나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 때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며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경찰청장 등 현장 책임자의 즉각적인 처벌을 촉구했다.한총련 기자회견 및 연세대 학생회관에 설치된 노수석 열사 추모 분향소■ 학교 당국 성명서 발표학..
1996년 3월 29일노수석 열사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확보를 위한 서총련 결의대회’ 중 사망 ■ 1,50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한 ‘연세인 결의대회’연세대 민주광장에서 연세대 학생 1,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등록금 동결과 교육재정 확보, 대선자금 공개를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렸다. 학생들은 집회 뒤 본관건물을 항의 방문해 총장실, 기획실장실, 교무처장실의 집기를 모두 들어내고 일방적 고지서 발송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학생들은 “앞으로 또 다른 면담과정을 통해 등록금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자”고 요구했다.등록금 동결과 교육재정 확보, 대선자금 공개를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작전’이 펼쳐진 종묘연세대생들은 본관 앞 항의 집회를 마친 뒤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와..
96년 초에서 3월 전까지■ 연세대, 재단의 어려움 이유로 등록금 16.38 % 인상연세대학교는 “연세우유 파동으로 재단의 재정상태가 현저하게 악화된 현재 상황에서, 대학원 중점대학 설립 대응자금과 소급 퇴직금 지급에 따른 지출액을 재단전입금만으로 부담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며 “재학생 평균 16.38 %의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등록금 인상 방침을 밝혔다.■ 1월 18일 연세대·고려대 총학생회 성명서 발표 고려대와 연세대 총학생회는 사립대 등록금 인상반대와 정부의 교육재정 확보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5·31 교육개혁 등 정부의 교육정책은 교육의 세계화와 대학의 경쟁력 제고에만 치우쳐 이에 따른 재정부담을 큰 폭의 등록금 인상을 통해 학생 및 학부모에게 전가하려 하고 있다”고 ..
노수석 열사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1996년 3월 29일 집회의 요구사항은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확보'였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요구사항이 1996년 봄, 개강과 함께 전체 학생운동 진영의 핵심 투쟁 사안이 되었는지를 정리해본다. ■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는 1995년 하반기 정국을 달구었던 5․18 학살책임자 처벌 투쟁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5․18 책임자 사법 처리 공소시효 만료가 다가오자 이에 대한 법리논쟁이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게다가 1995년 7월 18일 검찰에서 5․18 피고소, 고발인 58명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이 발표되자 학살자 처벌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가 촉발되었다. 7월 31일 고려대 교수 131명의 '5․18 특별법 제..
※ 이 글은 열사가 활동했던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풍물패 '천둥'의 날적이에 남긴 글입니다. '똑해'는 천둥에서 지은 열사의 패명입니다. 주말에 집에 다녀왔다. 부모님은 잘 계셨고 동생도 잘 생활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아주 어리게 보이나 보다. 내년에 군대에 가겠다고 하니까 걱정하는 모습이셨다. 그리고 아직도 내가 너무 어리게 행동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아버지, 어머니가 나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큰데 지금 나의 모습을 보면 너무 한심하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다고 한다. 평소 별 생각 없이 살아온 내가 과연 선거운동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많은 생각을 하려고 한다.1995년 11월 6일 월요일 똑해 방금 글터 일일호프에 다녀왔다. 돈은 별로 내지도 않고 ..
1976년 11월 23일, 빛고을 광주에서 노수석은 아버지 노봉구, 어머니 기정애씨의 2남 2녀(큰누나 은경, 작은누나 경민, 남동생 수만)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세상을 만나던 시절, 그는 해맑은 미소가 이쁜 아이였다. 누나와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도 타고, 피아노도 배우고, 집 앞마당에서 동생과 사진도 찍었다.누나와 함께초등학교 시절(1989년 2월 광주 장원초등학교 졸업), 그는 온순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의젓한 학생이었다. 착하고 온순한 아들이, 그렇게 빨리 부모 곁을 떠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동생과 함께 빛고을에서 하나씩 둘씩 꿈을 키워가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착하고 건강한 아들이었다. (1992년 2월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 졸업, 1995년 2월 광주 대동고등학교 졸..
1976년 11월 23일 광주 출생1995년 2월 광주 대동고등학교 졸업1995년 3월 연세대학교 법학과 입학1995년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풍물패 '천둥' 활동1996년 3월 29일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서총련) 결의대회’에서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의해 사망1999년 2월 95학번 동기들과 함께 연세대학교 명예졸업장 받음2003년 9월 9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2006년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