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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수석/노수석의 삶

1. 열사의 어린 시절부터 연세대학교 입학까지

노수석추모사업회 2016. 3. 28. 18:08

1976년 11월 23일, 빛고을 광주에서 노수석은 아버지 노봉구, 어머니 기정애씨의 2남 2녀(큰누나 은경, 작은누나 경민, 남동생 수만) 중 큰아들로 태어났다. 호기심 어린 눈망울로 세상을 만나던 시절, 그는 해맑은 미소가 이쁜 아이였다.

     

누나와 놀이공원에서 회전목마도 타고, 피아노도 배우고, 집 앞마당에서 동생과 사진도 찍었다.

누나와 함께

초등학교 시절(1989년 2월 광주 장원초등학교 졸업), 그는 온순하고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의젓한 학생이었다. 착하고 온순한 아들이, 그렇게 빨리 부모 곁을 떠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동생과 함께


빛고을에서 하나씩 둘씩 꿈을 키워가던 중고등학교 시절. 그는 착하고 건강한 아들이었다. (1992년 2월 조선대학교 부속중학교 졸업, 1995년 2월 광주 대동고등학교 졸업)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책읽기를 좋아하고 조리있게 말을 잘해 친구도 많았던, 모범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열사가 활동했던 풍물패 친구들과 함께 (아랫줄 왼쪽에서 두 번째)


1995년 연세대 법학과에 입학해 상경했다. 법관의 꿈을 꾸며 서울로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가 교육부 장관을 꿈꾸고 있었다고 하셨다. 친구들이 기억하는 그는 ‘말수는 적지만 침착하고 항상 밝게 웃던, 따뜻한 심성을 가졌던 좋은 사람’이었다.

과 동기들과 함께 (왼쪽에서 네번째)

과 동기들과 함께 (왼쪽에서 두번째)


법대 풍물패 ‘천둥’에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대학 생활은 그에게 또 다른 세상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가치관을 빨리 수립하고 싶어 하고, 동아리 후배들을 만날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대학생이었다. 삶의 의미를 찾고 자신의 모습을 하나 하나 바꾸려고 노력하는, 이 땅의 젊은이로 살았다.

“어려운 규칙 하나 없는 게임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듯이 어려움 없는 인생도 무미건조할 것”이라며 욕심 부리지 않고 충실하게 살았던 사람.

하지만 그렇게 세상과 자신을 향한 열망이 숨쉬던 시절, 그 치열한 고민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꿈을 펴보기도 전에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동아리 천둥 선배, 동기들과 함께 (왼쪽에서 네 번째)



참고문헌: <노수석 백서 - 너는 먼저 강이 되었으니>, 2005,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