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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수석/1996년 3월 29일

8. 장례식 이후 49재까지

노수석추모사업회 2016. 3. 29. 00:34

4월 11일 서총련, 진상조사 요구 단식농성 시작

4월 11일부터 ‘노수석 열사 사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총련 구국 단식단’(단장 문병두, 연세대 법대 94)의 단식이 시작되었다. 단식은 4월 19일까지 계속되었다.

농성장 모습 (1996년 4월 16일 한양대신문)


당시 발행된 학생대책위 유인물


4월 12일 연세대, 학교측 입장 한겨레 신문에 게재 

당초 학교 당국은 ‘11일에 조선, 동아, 중앙, 한국, 한겨레 등 5대 일간지를 통한 성명서 발표’를 약속했으나 이를 어기고 한겨레 신문에만 성명을 발표해 또다시 학생들과의 약속을 어겼다. 

특히 학교 당국에서 발표한 성명서 옆에는 4월 8일부터 10일까지 8,021명의 연세대 학생들이 모금한 4,325,900원으로 낸 광고가 실렸는데, 학생들의 광고보다도 학교 당국의 광고가 더 작아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1996년 4월 12일 한겨레 광고란


4월 13일 노수석 열사에 대한 최종 부검결과 발표 

■ 서울경찰청 수사본부, 노수석 열사 최종 부검 결과 발표

서울경찰청 수사본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최종부검 결과를 인용해 사망원인을 ‘심근병증에 의한 급성심장사(돌연사)’로 최종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했다.

수사본부는 “노군의 팔과 등에 피하출혈(피멍) 흔적이 있었지만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는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또 경찰은 “노군의 심장이 일반인에 비해 크고 섬유질도 두껍고 부드러운 점으로 미뤄 노군이 심근병증에 의한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켜 돌연사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하고, “노군의 목과 가슴 등에서 발견된 피하출혈 흔적은 심폐소생술 등에 의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 고 노수석 열사 추모 3차 국민대회 개최

‘애국학생 고 노수석 추모 및 김영삼정권 살인폭력진압 대책위원회’ 주최로 오후 5시쯤 연세대에서 2,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3차 국민대회’가 개최됐다. 당초 종로3가 종묘공원에서 집회를 열 계획이었으나 경찰이 집회를 불허해 연세대로 장소가 바뀌었다. 

학생들은 교문 밖 진출을 시도하다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교문 앞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한 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서 학생들은 1조 2000억원 규모의 대선자금을 낱낱이 공개하고 교육재정을 확보하라고 외쳤다. 또 학생들은 진상규명과 노수석 열사 사망 당시 내무부 장관, 교육부 장관, 경찰청장, 현장 지휘 책임자 등 책임자들의 사법처리 및 김영삼 대통령의 처벌을 요구했다.

 


4월 16일 ‘애국학생 고 권희정 열사 추모와 김영삼 정권의 허구적 교육정책 분쇄를 위한 청년학생 결의대회’ 개최

4월 7일 학원자주화투쟁을 위한 단식 후유증으로 운명한 권희정 열사를 추모하고 김영삼 정권의 허구적 교육정책을 규탄하는 청년학생 결의대회가 진행되었다.


4월 17일 민주납부자 총회

민주납부에 참가한 1,500여명의 연세대 학생들이 이후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총회를 개최했다.

 

4월 18일 연세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연세대 총학생회는 학생들과 함께 ‘노수석 열사 사망 책임자 처벌과 등록금 투쟁 완전 승리를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진행 후 조속한 등록금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총장실을 점거했다.

 

4월 19일 서총련 출범식

서총련은 출범식을 진행하고 서울 명동과 을지로 등에서 대선자금 공개와 등록금 인하, 노수석 열사 사인 진상규명 등을 요구하며 거리시위를 벌였다.

 

4월 20일 총장 면담 진행

총학생회 대표들과 송자 총장, 기획실장 강창언 교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총장면담이 진행됐다. 

김형철 교수와 우상호 동문이 입회자로 참여한 면담에서 ① 96년도 등록금 인상률을 9.9%로 재조정할 것 ② 오는 1997년부터 신입생 등록금과 재학생 등록금을 동일하게 인상할 것 ③ 공간문제를 결정하는데 있어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할 것 ④ 재단의 자료내용과 재단전입금의 확충내역, 사용내역을 공개할 것 ⑤ 한일협력기금의 전면반환을 위해 노력할 것 ⑥ 민주납부를 한 학생들에 대해 불이익이 없도록 할 것 등 모두 6개 사안, 24개 세부항목에 대해 의견접근을 보았다. 

그러나 7번째 사안인 노수석 열사 관련 4대 일간지 사과 성명 게재문제와 관련해 학교 당국이 거부의사를 밝혀 더 이상 협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이 면담 결과에 대해 교무위원회에서는 4월 24일 담화문을, 교수평의회는 4월 30일 성명서를 발표해 “지난 4월 20일 총장면담 과정에서 학생들과 학교 당국간에 논의된 내용들은 대부분 교권을 침해하는 내용들로 이는 학생들과 학교 당국의 ‘협의’나 ‘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앞으로 어떠한 형태로든 교권을 침해하는 내용의 협의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해 총학생회의 요구안이 일괄 타결되는 것에 대해 반대의사를 밝혔다.

 

4월 26일 서울경찰청, 대책위 민원에 대한 회신

서울지방경찰청에서 대책위원회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제출했던 민원에 대한 회신이 도착했다. 

회신의 내용은 3월 29일 집회와 관련해 경찰의 해산과정에 문제점이 있었는지를 조사했으나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서울시경의 회신

 

4월 29일 연세대 총학생회, 총장실 점거 해제

연세대 총학생회는 11일 동안 진행했던 총장실 점거를 해제했다.

 

5월 1일 연세대 총학생회 단식 농성 돌입

문과대 부학생회장 장형준 등 7명이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들은 “학교당국이 학생들과의 대화에 성실하게 임하고, 민주납부자와 납부 연기자에 대한 탄압을 철회하는 한편 노수석 열사 문제와 관련된 4대 일간지 게재요구를 이행할 때까지 무기한 단식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6일 연세대 총학생회, 무악대동제 개최

연세대 총학생회는 ‘학원자주화 완전승리와 고 노수석 군 부활’을 기조로 하는 ‘무악대동제’를 개최했다.



5월 10일 연세대 총학생회, 공동요구안 타결

밤 11시 30분, 본관 총장실에서 송자 총장을 비롯한 학교당국자들과 총학생회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등록금 9.9% 인상안에 합의 하는 등 학내 제반 사항이 합의되었다.


1996년 5월 13일 연세춘추

5월 16일 49재 추모집회 개최

■ 49재 추모집회 개최

연세대 총학생회는 노수석 열사의 49재를 맞아 ‘학원 자주화 투쟁 승리 보고대회’를 가진 뒤 ‘고 노수석 열사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과 부패 살인정권 퇴진을 위한 통일연세투쟁본부 발족식’을 진행했다. 발족식 이후 참가자들은 ‘박일룡 경찰청장, 안병영 교육부장관, 김우석 내무부장관, 김영삼 대통령’을 상징하는 조형물의 화형식을 가졌다. 

이어서 서총련 주최로 ‘고 노수석 열사 추모와 5월 투쟁 승리를 위한 청년학생결의대회’를 진행, 교문 앞에서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1996년 5월 20일 연세춘추

■ 학교 당국, ‘고 노수석 군의 영면을 추도하며’라는 제목으로 4대 일간지(조선, 동아, 중앙, 한국)에 성명서 발표

노수석 추모신문에 실린 추모 만화


참고문헌: <노수석 백서 - 너는 먼저 강이 되었으니>, 2005,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