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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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수석/1996년 3월 29일

7. 1996년 3월 31일부터 열사의 장례식까지

노수석추모사업회 2016. 3. 28. 22:10

3월 31일 부검실시

오전 10시 30분부터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에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김시진의 지휘로 국립과학수사 연구소 법의학과장 등 4명이 6집도한 가운데 부검이 실시되었다. 

부검에는 연세대 법의학 조상호 교수, 고려대 법의학 황적준 교수, 국립의료원 이승철 신경외과 전문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이하 인의협) 소속 의사 양길승, 노수석의 당숙인 의사 노광을, 변호사 이덕우, 학생대표와 유족 6명, 한겨레와 연합통신 기자 2명, 서울지방 경찰청 형사과장 김판근과 중부경찰서장 최관현 총경 등이 참석했다.

부검 결과, 전체 7군데에서 피하출혈이 발견됐고 심장이 다소 무겁고 비대확장되어 있었음이 발견됐다. 부검의들은 외상이 있으나 직접 사인으로 보이지 않고 심장이 비대 확장된 것으로 보아 심근증이나 심근염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미뤄 직접 사인을 내인성 급성 심장마비로 추정했다.

그러나 부검 참관인으로 참가한 양길승 박사는 “노 군과 같이 평소 건강하게 지내던 청년이 외부 충격이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심장 이상 증세만으로 사망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또 “시위 진압 과정에서 가해진 외부적 충격이 심장에 영향을 주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4월 1일 대책위, 부검 결과 반박 및 서총련, 동맹휴업 결의

■‘애국학생 고 노수석 추모 및 김영삼 정권 살인폭력진압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전국연합, 민변 등 23개 단체로 구성된 대책위(위원장 이창복 전국연합 상임의장)는 기자회견을 열고 “죽은 노수석열사 직접적 사인이 ‘급성심장질환’인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궁극적 원인은 경찰의 과잉폭력진압에 있다”고 강조하고, “노수석 열사의 사인인 ‘급성심장질환’이 마치 열사의 지병에 의한 것처럼 알려지고 있는 일부 언론의 보도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또 “공권력을 남용해 사망사건이 일어나게 한 과잉진압 책임자 전원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 서총련 9~10일에 ‘동맹휴업’ 방침 발표

이에 앞서 서총련도 연세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수석 열사가 심근증이나 심근염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숨졌다는 부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오는 9~10일에 노수석 열사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동맹휴업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노수석 열사의 사인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현 정권의 퇴진을 목표로 비폭력투쟁을 펼쳐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우리 학우 故 노수석 열사 추모 및 연세인 다짐대회’ 개최

연세대 학생 1,000여명도 다짐대회를 열고 김영삼 대통령의 사과와 내무부장관, 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학생들은 이후 신촌 로타리를 거쳐 이대 방면을 지나 신촌역까지 행진한 뒤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을 찾아 단체 조문하고 해산했다.

‘우리학우 고 노수석 열사 추모 및 연세인 다짐대회’에 참가한 후 신촌역까지 행진을 진행했다


4월 2일 촛불집회 개최

■ ‘우리 학우 고 노수석 열사 추모를 위한 촛불행진’ 개최

오후 7시쯤 촛불집회를 진행하고 신촌 로터리까지 행진한 후 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앞에서 해산했다. 

이후 매일 저녁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촛불집회가 진행됐다.

■ 장례 4월 4일로 결정

노수석 열사 아버님께서 이날 저녁 장례식을 4일 치르겠다는 입장을 밝히셨다. 

연세대 총학생회 중운위원들이 법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진상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만이라도 장례식을 연기해달라고 간곡히 부탁드렸지만 아버님께서는 결국 4일로 결정을 내리셨다. 

연세대 법대 학생회는 곧바로 확대비대위를 열어 마지막 방법으로 다음날 법대 모든 학우들이 아버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장례식 연기를 부탁드리기로 결의했다.

 

4월 3일 전국적으로 총궐기대회 개최

■ ‘고 노수석 열사 정신계승을 위한 총궐기대회’ 개최

이날 전국 곳곳에서 추모집회가 진행됐다. 

서총련 소속 학생 5,000여명은 연세대에 모여 “노수석 열사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해야 할 학교당국이 공개사과는 커녕 장례일정을 앞당기려 유족을 회유하는 등 노수석 열사를 두 번 죽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 “평화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김영삼 정권은 퇴진하라”며 대정부 규탄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은 신촌 로터리에서 1시간 30분 동안 노상집회를 가진 뒤 청와대 항의방문을 위해 가두시위를 벌이며 시내로 진출했다. 경찰의 진압을 피해 선전전을 벌이며 시내를 행진하던 학생들은 저녁 8시 30분쯤 최루탄을 쏘며 길목을 막고 있던 경찰과 대치,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유가족 입장문과 송자 총장의 애도문

집회를 마치고 신촌로터리까지 행진하며 김영삼정권을 규탄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서 규탄 집회가 계속되었다.


4월 4일 장례식 연기 결정 

이대로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안타까움 속에 발인예배가 오전 7시에 열렸다. 

노수석 열사의 장례행렬은 학교로 들어와 체육관과 이과대 앞을 거쳐 법대 건물에 이르렀고 노수석 열사가 생전에 활동했던 법과대 풍물패 ‘천둥’ 방에서 잠시 머물렀다.

본관 앞에서 우상호(전 연세대 총학생회장) 동문의 사회와 유족 및 장례위원과 학생, 재야단체 회원 등 만 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영결식이 진행됐다.

▴ 발인예배(왼쪽 위)를 마친 후 장례행렬은 연세대 교정을 돌았고(오른쪽 위) 본관 앞에서 영결식이 거행됐다.


영결식이 끝난 뒤 10시쯤 장례행렬이 교문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을 무렵 행렬의 선두에 서 있었던 연세대 법대 학생 300여명이 교문 앞으로 달려가 대열을 막아섰다. 그들은 “이대로 수석이를 묻을 수 없습니다. 아버님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어째서 송자 총장이 단 한마디의 사과도 없이 장례식 고문으로 나설 수 있습니까”라며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장례를 멈추어 줄 것을 부탁드렸다.

장례행렬이 연세대 백양로를 지나 교문을 향하고 있다.

연세대 학생 1,000여명이 이에 동참, 마지막으로 아버님께 장례식을 연기할 것을 부탁드리는 의미의 침묵 시위를 계속했다. 낮 12시쯤 법대 학생 20여명이 송자 총장을 찾아가 공식사과를 한 번 더 요구하려 했으나 총장은 자리를 비워 만날 수가 없었다. 이 소식이 교문 앞에 있는 학생들에게 전해지자 많은 학생들이 자유발언을 시작했다. 노수석 열사의 죽음에 대한 정부의 구체적인 사과,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고, 총학생회와 대책위는 다시 한 번 유가족에게 장례연기를 호소했다.

장례 연기를 촉구하는 연세대생들

결국 이날 오후 송 총장은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기자회견을 열고 “노군의 죽음과 관련해 학교 측에 도의적인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시인했다.

송 총장은 학생들이 제기한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등록금 고지서가 일방적으로 발송된 것은 당시 최고 책임자로서 불가피한 결정이었고, 지난 3월 28일 ‘총장면담’에서 학생회장단에게 그 뜻을 전달했다”고 해명했다. 송 총장은 또 “앞으로 노군 사망에 관련된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학생들과 시민들은 “이는 노수석 열사 사망의 일차적인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로서 밝혀야 할 구체적이고 명확한 답변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또 노수석 열사의 사망과 관련해 학교 당국의 책임있는 사후 대책 발표와 정부당국 최고 책임자의 공개사과, 시위 진압 관련 책임자 처벌 등이 이루어질 때까지 장례식을 열수 없다는 점에 모두 공감했다. 결국 총학생회는 유가족과 논의한 끝에 ‘학생들과 유가족의 요구사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장례일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후 장례에 참석했던 학생들은 남대문과 서울역 등 서울 시내에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가두투쟁을 진행한 뒤 해산했다.

노수석 군 사망과 관련한 기자회견문

금번 노수석 군이 사망한 불행한 사태에 관하여 연세대학교를 책임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본인은 도의적, 교육적 책임을 통감하며, 깊이 사과드립니다. 이번 사태의 해결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음을 양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노수석 군을 기리고 그 유지가 이어지도록 학생들과 협의하여 기념사업을 추진해 나갈 것을 약속합니다. 

학생들의 등록금 고지서 발부문제에 관하여는 학생들과 오랜 기간동안 협의를 거쳤으나, 대학의 학사일정상 시한이 급박하였던 관계로 불가피하게 고지서를 발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충분한 이해를 구하는데 미진한 점이 있었음을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 문제는 학생들과 계속 성실하게 협의해 나갈 것을 약속드립니다. 

노 군의 사인이 강경한 시위진압과 전적으로 관계가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운만큼 지나치게 물리적 힘으로 대처한 경찰 당국에 본인은 이미 구두로 유감을 표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다시 경찰당국에 엄중히 항의하는 서한을 발송할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근본적으로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문제에서 비롯하였기 때문에 이 같은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사립대학 교육 개선을 위한 재정지원을 정부당국에 강력히 요청할 것입니다. 

4월 4일 연세대학교


4월 5일 연세대 법대, 학생총회 진행

 

■ 연세대 법대 학생총회 진행 

연세대 법대 학생회는 학생총회를 개최해 열사의 장례가 연기된 상황에 대해 토론을 진행하고 학교측에 대한 요구사항을 정리했다. 

학생총회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학생총회 요구사항

※ 기조

1. 수석이가 백양로에 누워 있는 상황에서 수석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시민들의 반응을 의식할 때 장례식을 결코 오래 끌 수는 없다. 

2. 정부에 대한 싸움은 장기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따라서 장례식이 치러지기 전에 반드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총선정국을 생각해 볼 때 무리이다. 

3. 따라서 먼저 학교측에 대한 요구사항이 관철되면 장례를 치루는 것으로 하되, 잘못하면 이 사태가 학내 문제로 축소될 소지가 있으므로 학교측에 대한 요구사항 중에 대정부 대응 방안 및 대 언론 대응방안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 학교측에 대한 요구사항

1. 학교당국은 유족과 학우에게 공식 사과한다. 

2.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정부의 공식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서 학교가 주체가 되어 정부의 과잉 진압에 대한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성사시킨다. 

3. 학내문제(등록금 문제 등)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학생측과 성실하고 책임있는 대화를 재개한다(‘책임’있다는 것은 ‘결정권을 가진’ 것을 의미한다)

4. 연세대학교 교수, 학생, 임직원 명의로 정부에 대한 요구를 담화문 형식으로 5대 일간지에 게재한다. 

5. 학교측은 학생과의 협의를 통해서 장례 이후의 추모사업을 진행한다. (추모비 등등)

학교측은 이에 대해 통고한 기간 내에 반드시 답변을 해야 할 것이며 그렇지 않을 경우 장례식이 지연되는 것에 대한 도의적, 사회적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장례가 연기된 후 신촌로터리 등지에서 진행된 노수석 열사 추모 집회


4월 6일 ‘애국학생 고 노수석 열사 추모와 김영삼 정권 살인 폭력 진압규탄을 위한 국민대회’ 개최

대학생과 재야단체 회원 등 2,500여명은 서울 종로3가 종묘공원에서 규탄집회를 열고 경찰청장 등 시위진압 관련 책임자의 처벌과 김영삼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을지로를 거쳐 명동성당까지 거리 행진을 했고 명동성당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였다. 

부산에서도 시민들과 학생 500여명이 부산역 광장에서 국민대회를 열고 김 대통령의 공식사과와 대선자금 공개를 요구했다. 

또 한총련 소속 대학생 80여명은 노수석 열사의 시신 옆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4월 8일 민변, 진압관련자 고소

■ 민변, 노수석 열사 진압관련자 고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이 노수석 열사 아버지 노봉구씨를 대리해 박일룡 경찰청장과 서울지방경찰청장, 차장, 기동대장, 시위진압 지휘중대장 등 관련자들을 서울지검에 고소했다. 

민변은 고소장에서 “박 경찰청장 등은 지난 달 29일 대선자금 공개와 등록금 부당인상 저지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을 모두 붙잡도록 지시하고 폭력진압을 수행해 노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밝혔다.

■ 법대 비대위 청와대 항의방문

연세대 법대 학생들은 전면 휴강에 들어가고,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위한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진행했다. 

민주광장에서 법대 비상대책위 주최로 연세인 결의대회를 가진 법대 학생 200여명은 종로구 계동 현대빌딩 앞에서 집회를 개최한 후 “경찰청장 등 관련자 즉각 처벌, 학생운동을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백골단 해체” 등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4월 9일 연세대 총학생회, 본관 점거 및 학교측 답변 요구

노수석 열사의 시신이 백양로에 멈추어 있었지만 연세대학교 측은 열사의 죽음에 책임을 지는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이에 연세대 총학생회는 본관을 점거하고 학교측과 협상을 벌였다.

학교 측은 ‘등록금 문제 및 고지서 발부의 과정에 대해 사과를 표하고 등록금 문제에 대해 학생들과 다시 협의할 것을 약속하고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도 항의의 뜻을 공개적으로 표명할 것을 약속하겠다’는 내용의 답변을 발표했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의 총장실 점거 후 발표된 연세대학교의 입장



4월 10일 노수석 열사 장례식

“장례를 더 이상 연기하기는 힘들다”는 유가족의 뜻을 받아들여 노수석 열사의 장례식이 학생장으로 치러졌다. 연세대 박병언 총학생회장의 추모사로 오전 10시 장례식을 시작했으며 신촌로타리에서 노제와 ‘부활굿’을 진행한 뒤 노수석 열사의 운구를 앞세워 가두행진을 시작했다.

장례행렬은 아현 고가도로를 건너 시청 앞, 을지로, 종로를 지나 2시쯤 서울 종로3가 종묘공원 앞에 도착했고 2만여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애국학생 고 노수석 열사 추모식’이 개최됐다.


열사의 장례행렬이 연세대 교문을 통과하고 있다.

신촌로터리에서 노제를 진행한 후 종묘로 이동하고 있는 운구차와 장례행렬

추모식을 마친 뒤 유가족과 학생들은 오후 4시쯤 광주로 출발해 저녁 8시 30분쯤 광주역 앞에 도착했다. 장례행렬은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남총련 학생들과 함께 추모 집회를 열었고 이후 광주시청까지 가두행렬을 하였다. 광주 대동고 동문들이 운구차를 호위했고 밤 10시쯤 광주 시청 앞에서 ‘애국학생 고 노수석 열사 시청 앞 노제’가 진행됐다. 밤 11시 30분쯤 망월동 묘역으로 향해 새벽 1시 20분 하관식을 갖고 하관 예배를 진행했다. 

노수석 열사는 광주 망월동 5·18 묘역에서 김남주 시인의 묘지 부근인 3묘역 367번 묘지에 안장됐다.

장례행렬은 광주로 이어져 광주시청 앞에서 노제를 갖고 열사를 망월동 묘역에 안장했다.



참고문헌: <노수석 백서 - 너는 먼저 강이 되었으니>, 2005,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