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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는 지난 9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의 치료비를 모금했던 바 있습니다. 모금이 끝나고 이틀 뒤, 안타깝게도 백남기 농민께서는 영면하셨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20년 전 노수석 열사의 죽음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20년간 반성이 없었던 국가폭력은 또다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더 이상 이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故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기사원문: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27513&code=11131200&sid1=soc - 2016.10.11. [기획] 2016 백남기·1996 노수석 사건은 ‘판박이’ 과잉 진압 ..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는 지난 9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의 치료비를 모금했던 바 있습니다. 모금이 끝나고 이틀 뒤, 안타깝게도 백남기 농민께서는 영면하셨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20년 전 노수석 열사의 죽음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20년간 반성이 없었던 국가폭력은 또다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더 이상 이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故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기사원문: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01653001&code=940100 - 2016.10.10. "20년전 노수석 열사 사망 사건은 고 백남기씨 사망과 판박이...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는 지난 9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의 치료비를 모금했던 바 있습니다. 모금이 끝나고 이틀 뒤, 안타깝게도 백남기 농민께서는 영면하셨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20년 전 노수석 열사의 죽음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20년간 반성이 없었던 국가폭력은 또다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더 이상 이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故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기사원문: http://www.nocutnews.co.kr/news/4666034 - 2016.10.10. 백남기·노수석, 너무나 닮은 1996년과 2016년 경찰진압과정에서 숨진 노 씨, 부검했으나 결과는 병사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뒤 숨진..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는 지난 9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의 치료비를 모금했던 바 있습니다. 모금이 끝나고 이틀 뒤, 안타깝게도 백남기 농민께서는 영면하셨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20년 전 노수석 열사의 죽음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20년간 반성이 없었던 국가폭력은 또다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더 이상 이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故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 기사원문: http://news1.kr/articles/?2788847 [백남기 부검논란] "아들 부검 깊이 후회"…연세대 노수석씨 부친 96년 시위진압 과정서 사망한 노수석 학생 父 인터뷰최루탄 흡입·구타 정황에도 부검서 "사인은 심장질환" 1..
추모사업회가 회원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들어보는 회원 인터뷰, 세번째 순서는 연세대 국문과 김영희 교수(국문 92)입니다. 김영희 교수는 지난 8월부터 카페 마주에서 연세대 항쟁 20주기 기획전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세대 항쟁도 어느덧 20년이 흘렀습니다. 20년 전의 나, 20년 전 우리는 누구였을까요. 지금껏 이야기되지 못했던 1996년 8월 연세대에서의 그 날을 되짚어 봅니다.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블로그에 자세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많은 방문 부탁드립니다. 블로그에서 보기: http://nosooseok.tistory.com/24유튜브에서 보기: https://youtu.be/CQEiKQUpz4g 추모사업회 회원 인터뷰는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진행됩니다. 다음 인터뷰도 기대해주세요! ※ 인터뷰는..
※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이 제정되자, 추모사업회는 노수석 열사의 명예회복 신청서를 접수했고, 명예회복위원회는 열사를 ‘민주화운동관련자’로 인정했습니다. 일지를 중심으로 그 과정을 정리해봅니다. 1. 위원회 출범과 신청서 접수'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이하 명예회복보상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는 노수석 열사의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 작성을 진행하였다.2000년 8월 9일, 1기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이하 명예회복위원회)가 이우정 위원장, 김경동, 김정기, 백화종, 김철수, 박승서, 조준희, 김상근, 최학래 위원으로 출범하였다. 추모사업회는 민주화운동정신계승국민연대(이하 계승연대)와 공동으로 18일 명동성당에서 기자회견 및 집회를 가진 ..
노수석 열사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1996년 3월 29일 집회의 요구사항은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확보'였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요구사항이 1996년 봄, 개강과 함께 전체 학생운동 진영의 핵심 투쟁 사안이 되었는지를 정리해본다. ■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는 1995년 하반기 정국을 달구었던 5․18 학살책임자 처벌 투쟁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5․18 책임자 사법 처리 공소시효 만료가 다가오자 이에 대한 법리논쟁이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게다가 1995년 7월 18일 검찰에서 5․18 피고소, 고발인 58명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이 발표되자 학살자 처벌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가 촉발되었다. 7월 31일 고려대 교수 131명의 '5․18 특별법 제..
※2015년 11월 26일 [민중의소리]에 기고된 칼럼입니다.※기사원문: http://www.vop.co.kr/A00000963364.html - 2015.11.26.[기고] YS는 대학생 노수석의 죽음을 기억할까오래된 정객(政客)의 죽음 앞에 부쳐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권현준 부회장 김영삼 전 대통령이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 앞에 나약한 한 인간으로, 병마와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그에게 우선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한 생명의 죽음 앞에서 벌어지는, 정략적 이해관계 속에 서로 자신이 고인의 정치적 적통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해프닝을 보게 된다. 정치 지도자가 아닌 마지막까지 정치의 손님인 정객(政客)으로 세상을 떠난 것에 더욱 애도를 표한다.이 글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위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