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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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수석/1996년 3월 29일

6. 1996년 3월 30일

노수석추모사업회 2016. 3. 28. 21:57

노수석 열사의 아버님

1996년 3월 30일 한겨레

1996년 3월 30일 중앙일보


3월 30일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요구 집회 잇따라

연세대 내 곳곳에 노수석 열사를 추모하는 분향소가 설치되었고, 열사의 사망에 대한 각계각층의 입장이 발표되었다. 


■ 한총련 기자회견 

오전 10시30분 한총련은 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사건은 총선을 앞두고 청년학도들의 투쟁의지를 꺾으려는 김영삼 정부의 폭력진압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주장했다. 

한총련은 “여러 가지 정황이나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의 증언을 토대로 볼 때 경찰의 과잉진압에 의해 살해된 것”이라며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경찰청장 등 현장 책임자의 즉각적인 처벌을 촉구했다.

한총련 기자회견 및 연세대 학생회관에 설치된 노수석 열사 추모 분향소

■ 학교 당국 성명서 발표

학교 당국은 송자 총장의 주재로 긴급 실․처장 회의와 교무위원회 회의를 열고 전체 교직원 명의로 ‘노수석 군의 사망을 애도하며’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학교 당국은 성명서에서 “노 군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부모님․가족․학생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불행의 재발을 방지키 위해 관계 당국의 대책마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 여야, 학생사망 진상 철저규명 촉구

- 신한국당 김철 선대위 대변인

"노씨의 사인은 정확하게 규명돼야 하지만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의 의도는 경계해야 한다"

- 국민회의 김한길 선대위 대변인 

"시위 중에 젊은 대학생이 숨진 사실은 우리 정치의 현실이 여전히 후진국 수준에 맴돌고 있음을 상징한다"

- 민주당 

"이번 불행한 사건의 근본원인은 정부의 열악한 교육정책과 대통령 대선자금 공개 회피에서 비롯됐다"

- 자민련 이동복 선대위 대변인

"시위 학생을 진압 경찰관이 폭행 치사시킨 이 사건은 문민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권의 권위주의 성격이 과거와 하나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 이수성 국무총리, 사인규명 지시

이수성 국무총리는 사인을 철저히 가려내 내용을 조속히 밝히라고 안우만 법무장관에게 지시했다. 


■ ‘故 노수석 학우 추모 및 살인폭력만행규탄, 김영삼 정권 퇴진을 위한 한총련 결의대회’ 개최

이날 오후 2시 연세대 민주광장에서 6,0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결의대회가 진행됐다. 

한총련은 ‘노군 사망에 대한 정부의 공개사과·내무부 장관 등 관련자 처벌·정확한 사인 규명·강경진압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고려대 등도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결합했고, 한양대, 건국대, 국민대 등 3개 대학은 등록금 인상안 철회 등을 주장하며 총장실 점거 농성을 계속했다. 

연세대, 성균관대, 경기대, 숭실대, 건국대 등 서총련 소속 14개 대학 총학생회도 이틀째 동맹휴업을 강행했다. 

결의대회를 마친 후 시내로 진출하기 위해 연세대 교문 앞에서 전경과 대치 중인 학생들


■ 시신 세브란스로 옮겨옴 

한편 연세대 총학생회는 노수석 열사의 시신을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오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송자 총장을 비롯한 교수와 교직원들이 오후 2시 30분 경, 노수석 열사의 시신문제 해결을 위해 국립의료원에 도착했다. 이에 학생들은 송자 총장 앞에 무릎을 꿇고 “시신을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기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오후 3시쯤 송자 총장, 이도윤 연세대 부총학생회장, 경찰, 유족대표 등은 2시간 여 동안 회의를 열고 시신을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길 것과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부검을 실시할 것 등을 합의했다. 

저녁 6시 반쯤, 국립 의료원을 출발한 시신은 7시 20분 경, 학교 정문에 도착했으나 학생 4,000여명과 경찰이 여전히 교문 앞에서 대치하고 있어 한동안 대기해야했다. 

    

학생들의 호위 속에서 연세대 교정을 통과하고 있는 시신

결국 학생들의 요구를 학교와 병원이 받아들여 노수석 열사의 시신은 정문을 통과한 뒤 학생들의 호위를 받으며 노천극장, 동문 앞을 지나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했다. 

연세대 학생들은 곧바로 영안실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1996년 3월 31일 중앙일보



참고문헌: <노수석 백서 - 너는 먼저 강이 되었으니>, 2005,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