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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소리] [기고] YS는 대학생 노수석의 죽음을 기억할까

노수석추모사업회 2016. 3. 28. 00:55

※2015년 11월 26일 [민중의소리]에 기고된 칼럼입니다.

※기사원문: http://www.vop.co.kr/A00000963364.html - 2015.11.26.

[기고] YS는 대학생 노수석의 죽음을 기억할까

오래된 정객(政客)의 죽음 앞에 부쳐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권현준 부회장


김영삼 전 대통령이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 앞에 나약한 한 인간으로, 병마와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그에게 우선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한 생명의 죽음 앞에서 벌어지는, 정략적 이해관계 속에 서로 자신이 고인의 정치적 적통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해프닝을 보게 된다. 정치 지도자가 아닌 마지막까지 정치의 손님인 정객(政客)으로 세상을 떠난 것에 더욱 애도를 표한다.

이 글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위로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가 들으라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언론은 앞 다투어 그의 공과 과를 나누어 브리핑하고 있다. 모두가 하는 그 일에 동참할 이유는 없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지나칠 만큼 고스란히 안고 떠나기에 억울함은 없을 것이다.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 김 전 대통령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사진공동취재단


YS 정권의 한복판, 대학생 노수석의 죽음

이 글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가 안고 가지 않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19년 전에 있었던, 기억되거나 기억되지 못한 죽음들을 다시 불러오는 일이다. 그리고 19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죽음과 고통스러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2015년의 한 사람을 기억하려는 것이다.

1996년은 ‘정권 재창출’이라는 다섯 글자 때문에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시간이었다.

‘교육재정 확보’(교육재정 GDP 대비 5% 확보)라는 대선 공약을 지키라는 목소리와 권력을 얻는 과정에서 옳지 못한 돈이 사용되었다면 밝히라는 극히 상식적인 주장이 있었다. 민주주의에서 주장은 ‘집회’가 되기도 한다. 대학생들의 집회가 있었고 그는 정치지도자가 아닌 정객으로서의 판단을 내렸다.

그는 자신이 탄압받던 방식대로 대학생들을 탄압했다. 민주주의의 길을 가겠다던 그가 ‘집회’라는 민주주의를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노수석(연세대 법학 95)이라는 청년은 목숨을 잃었다.


1996년 종로 집회 현장ⓒ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제공


노수석은 경찰로부터 구타를 당했고, 노수석에게 이상이 있다고 판단한 주변 시민이 경찰에게 구조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리고 심장이 멎었다. 1996년 3월 29일 종묘공원에서 ‘교육재정 확보’와 ‘대선자금 공개’를 말하던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 결의대회 이후 거리 행진에서 벌어진 일이다.

생명 앞에 숫자를 붙이는 것만큼 천박한 행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천박함은 글 쓰는 이의 몫으로 돌리고 수(數)를 말하겠다. 1996년에만 정객은 노수석을 포함한 대학생 일곱 명의 생명을 가져갔다. 정확하게는 학생만 일곱이었다. 그리고 정객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앗아간 생명들에게 최소한의 죄책감이 담긴 ‘말’조차 하지 않았다.


고 노수석(연세대 법학 95)ⓒ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바보 같은 가정을 하려 한다. 21살의 노수석의 목숨이 지켜졌다면 어땠을까. 교육재정 확보와 대선자금 공개가,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적인 목소리 앞에서 이루어졌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21살 노수석이 그때 죽지 않고 지금 살아 있다면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노수석은 기 천만 원에 육박할 만큼 오른 대학등록금과 대책 없이 펼쳐지려는 미래의 삶을, 양 손에 쥐고 있는 자녀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을까. 시시각각 민주주의의 시계가 거꾸로 흐르고 있는 모습에 그는 무기력해 하고 있을까.


1996년의 노수석, 2015년의 백남기

정객이 앗아간 시간과 목숨, 그리고 그 목숨과 시간을 고스란히 빼앗긴 우리. 우리는 다시 1996년을 반복하고 있다. 그가 조문객을 맞이하며 누운 서울대병원 한 편에서는 농민 백남기(69) 씨가 사경을 넘나들고 있다.

상식적인 말을 하고 시민으로서 행동을 했기에 구타를 당하고, 구조의 몸짓조차 공격당한 2015년의 ‘1996년’이다. 그러함에도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자들은 과거의 죽음 앞에 눈물을 보이며 줄을 서지만, 살아서 위태롭게 싸우는 민주주의는 외면한다.

그렇게 오래된 정객의 죽음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하고 살려야 할 것을 살리지 못했을 때 빼앗겨 멈춰버린 시간의 대가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되새길 기회를 주고 있다.

글을 시작하면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하기에 앞서, 백남기 씨의 쾌유를 빌어야 하는 것을 잊었다. 순서가 잘못되었다. 여전히 미숙하다. 이제는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삼가 고인의 명복은 빈다.


故 노수석 약력

1976년 11월 23일 광주 출생 

1995년 2월 광주 대동고등학교 졸업

1995년 3월 연세대학교 법학과 입학 

1996년 3월 29일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 확보를 위한 서울지역대학총학생회연합(서총련) 결의대회’에서 경찰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의해 사망 

1999년 2월 95학번 동기들과 함께 연세대학교 명예졸업장 받음

2003년 9월 9일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