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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10월 3일 노수석 열사 아버님 노봉구씨 인터뷰

노수석추모사업회 2016. 10. 10. 11:56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는 지난 9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의 치료비를 모금했던 바 있습니다. 모금이 끝나고 이틀 뒤, 안타깝게도 백남기 농민께서는 영면하셨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20년 전 노수석 열사의 죽음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20년간 반성이 없었던 국가폭력은 또다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더 이상 이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故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10월 3일 노수석 열사 아버님 노봉구씨 라디오 인터뷰 방송분입니다. 46분 5초부터 청취하시면 됩니다.



[인터뷰 전문]


(tbs 홈페이지에서 보기: http://www.tbs.seoul.kr/fm/NewsFactory/interview.jsp)


[인터뷰 제 2 공장]


(1) "아들 부검 후회합니다"...최루탄 흡입, 구타 정황에도 사인은 '심장질환'

- 노봉구 씨 (96년 시위 도중 숨진 고 노수석 학생 아버지)


1996년 당시 연세대 법대생이었던 노수석 씨가 등록금 인상 반대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 진압 과정에서 숨을 거둡니다. 당시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해서 비난이 들끓었고 경찰은 당시도 노수석 씨를 부검하겠다고 했고 결국 부검을 했습니다. 자, 고 노수석 군의 아버님 노봉구 씨 전화연결해보겠습니다.

 

김어준 : 안녕하세요, 아버님?

 

노봉구 : 네. 안녕하세요.

 

김어준 : 네. 그러고 보니까 딱 20년 전 일입니다. 아직도 생생하시죠?

 

노봉구 : 그렇죠. 어떻게 잊을 수 있겠습니까.

 

김어준 : 저희가 어려운 질문을 해야 되겠는데 당시 아버님은 왜 경찰 부검요구에 응하셨습니까?

 

노봉구 : 그 때 당시는 누구나 그랬을 겁니다만 완전히 참 온 몸이 떨리고 정신 상태는 완전히 분노에 가득 차서 먼 앞날이나 이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래서 주변에서 부검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대로 따른 것이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김어준 : 통상적으로 부검을 하면 사망원인이 밝혀질 것이다, 제대로, 이런 기대가 좀 있으셨나요?

 

노봉구 : 그렇죠. 그렇기 때문에 부검을 한 것이죠.

 

김어준 : 아무래도 부검을 하면 일반적으로는 원인이 밝혀진다고 알고 있으니까요. 당시에 부검 결과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노봉구 : 부검 결과는 대단히 만족하기 어렵죠. 급성심장사 이런 식으로 나왔는데...

 

김어준 : 심장마비요?

 

노봉구 : 네. 심근병중에 의한 급성 심장사, 일종에 돌연사라고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나와 있는데 심장사로 의심이 된다, 이런 식으로 나왔어요. 부검에.

 

김어준 : 그러니까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켰다는 내용 아닙니까?

 

노봉구 : 그렇죠.

 

김어준 : 그러면 당시 노수석 학생이 평소 심장질환이 있었다거나 심장이 안 좋다거나 그런 게 있었습니까?

 

노봉구 : 전혀 그런 것은 없었죠. 한 번도 병원에 가본 적도 없었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까지.

 

김어준 : 그러면 당시를 되돌아보면 20년 전이면 백골단이 시위 진압 활약할 때거든요. 그렇다면 백골단이 보통 곤봉으로 진압하기도 하고 그런 기억이 나는데 혹시 노수석 학생 몸에 그런 외상은 없었나요?

 

노봉구 : 부검서를 보면 피하출혈이 네 군데가 발견됐어요. 등 쪽에, 옆구리 쪽 이런 데로 네 군데 피하출혈이 있었다고 기재가 되어 있는데 그것은 직접적 사망원인이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거기서 부검에서는 이야기를 해요.

 

김어준 : 그러니까 적어도 네 군데는 곤봉으로 맞든 해서 맞은 흔적이 분명히 있는데 그 맞은 흔적과는 무관하게 이것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심장이 안 좋아서 심장마비를 일으켰다, 부검 결과는 그렇게 나왔군요.

 

노봉구 : 네.

 

김어준 : 그러면 보통 유가족 측에서 전문가가 들어가거나 혹은 참관인이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습니까? 다른 의견을 가진 전문가는 없었나요?

 

노봉구 : 부검 현장에는 유가족은 참석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해서 부검현장에는 참석하지 못했고요. 우리 유가족 측에서 입회한 의사도 있었고, 경찰이나 검찰에서 추천한 의사도 있었고, 국과수에서 주로 집도해서 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김어준 : 경찰 측 말고 유가족 측 참관한 전문가가 다른 의견을 내진 않았나요?

 

노봉구 : 다음에 듣고 보니까 그것도 의사들의 분야가 다 다르다 보니까 심장 쪽 전문가였으면 여러 가지 더 논의가 있을 수 있는데 우리 측 의사는 심장 쪽 전문 분야가 전혀 아니에요. 그러니까 거기에 대해 뭔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서 반박을 하거나 그러지 못한 것으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김어준 : 참관인이 있긴 했지만 심장마비라고 주장하는 바람에 심장전문의가 아니다보니 거기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반박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버렸군요.

 

노봉구 : 네. 그랬다고 봐야 되겠죠.

 

김어준 : 사실 부검을 하면 오히려 진실이 밝혀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의심을 가지고 응하지 않으셨군요?

 

노봉구 : 그러니까 대응을 제가 잘 못한 거 같아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런 게 제일 아쉽죠.

 

김어준 : 부검 결과 때문에 소송에서도 패소한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는데 사실입니까?

 

노봉구 : 그렇죠. 그래서 이제 소송은 원래 형사와 민사 두 가지를 다 진행했었는데 형사는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는 고소, 고발이었고요. 그런데 그것은 검찰에서 바로 기각이 되어 버리고... 민사는 법정에서 국가에서 선임한 변호사 의견을 더 많이 청취해주고 거기다 비중을 두는 거 같았어요. 그리고 부검 결과가 선행요인에 대해서는 사망에 어느 정도 기인이 되었다, 라는 그런 의견이 있으면 되는데 전혀 그런 게 없거든요. 그래서 선행요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이 이렇게 부검을 해놓고 심장이 좀 이상한 거 같다, 그래서 급성 심장사 이런 식으로만 기재가 되어 버리니까... 재판부에서는 그 쪽 손을 아마 들어준 거 같습니다.

 

김어준 : 재판부가 의사는 아니다 보니까... 어쨌든 의사들의, 여기서는 경찰 측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부검 결과가 진압과정에서 폭력이 있었고 피하출혈이 네 군데나 있었다, 이런 이야기는 전혀 없고 심장이 이상해서 사망한 것으로 부검결과가 나오니까 부검보고서가 거꾸로 진실을 밝힌 게 아니라 소송에서 패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거네요?

 

노봉구 : 그렇죠. 그러니까 저는 이번 우리 고 백남기 씨 사망 사건을 보면서 우리 수석이 생각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부검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어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어떤 꼬투리, 실마리를 찾아내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죠. 그래서 이 부검은 신중히 생각을 해야 한다, 그리고 정황증거는 전혀 선행요인, 정황증거는 전혀 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안 주거든요. 그러니까 재판부에서는 아마 그래서 국가에서 선임한 변호사를 그렇게 우선적으로 받아들인 거 같습니다.

 

김어준 : 백남기 씨 사건을 보면서 나도 그 때 부검을 거부했어야 한다, 그런 후회가 되셨습니까?

 

노봉구 : 네. 그게 제일 후회스럽죠. 제가 제일 후회스러운 것은 자식 시신에 칼을 대게 했던 것, 그것이 제일 후회스럽고요. 진실이 오히려 더 묻혀 버리는 것, 그 때만 해도 다연발 최루탄으로 이렇게 막 쏘아대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그 최루 가스를 얼마나 많이 마셨을까, 그런데 그런 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그렇게 백골단 진압봉에 의해 두들겨 맞고 그랬을 때 얼마나 공포에 휩싸여서 체력적 한계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망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런 애한테 칼을 댔다는 것이 참... 애비로서 자식한테 너무나 미안하고 미안하죠. 지금.

 

김어준 : 그리고 결국 그것이 경찰이 원하는 결과대로 나왔고요.

 

노봉구 : 그렇죠.

 

김어준 : 그 전까지 그러니까 아픈 적도 없고 지병도 없고 건강하고 멀쩡한 학생이었던 거죠?

 

노봉구 : 그렇죠. 그 전에 1학기 마치고 군에 입대할 계획으로 있었어요. 아주 건강했습니다.

 

김어준 : 그런데 최루가스를 얼마나 마셨는지, 진압봉에 의한 폭력이 피하출혈을 어떻게 일으켰는지 이런 내용은 전혀 없고 단순히 심장마비다, 그러니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렇게 결론이 나버렸고 그것은 다 부검에 응했기 때문이라서 지금 와서 후회하시는 거고요. 그렇죠?

 

노봉구 : 그렇죠. 그래서 그게 제일 후회를 하고 참 제 자식한테 제일 미안하다,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어준 : 백남기 씨 유가족 측에서 그러면 부검에 응할 수 없다고 하는 대응을 보시면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마음 속으로 응원하시겠네요?

 

노봉구 : 네. 저는 그래서 사회단체나 여러 시민단체들에서 아마 지금 적절히 대응을 아주 잘 하고 계신다고 생각을 하고, 유가족들은 아마 그 때 저와 같은 상황이라서 어떻게 보면 그걸 멘붕이라고 합니까? 사리판단하기가 참 어려운 상태일 겁니다. 정신이. 그런데 아마 시민사회단체에서 그렇게 해주시니까 그대로 시민대책위의 말을 믿고 따라주는 것이 제일 좋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김어준 : 알겠습니다. 아직 직접 가보신 적은 없으시죠?

 

노봉구 : 네. 못 가봤습니다. 죄송합니다. 못 가봐서.

 

김어준 : 한 번 만나보실 의향도 있으세요?

 

노봉구 : 광주 쪽에 오시면 제가 뵙도록 하겠습니다.

 

김어준 : 알겠습니다. 오늘 어려운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봉구 : 네. 고맙습니다.

 

김어준 : 네. 지금까지 지난 1996년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 중에 사망했던 고 노수석 군의 아버님 노봉구 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