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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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노수석/그의 죽음 이후

10. 법률 제정 과정

노수석추모사업회 2016. 3. 29. 00:55

※ 1997년 김대중 정권의 등장과 함께 시민사회단체 내에서는 민주화운동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에 대한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진행됬습니다. 그 노력과 결실을 정리합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과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의 의미, 경과 및 시행


1. 법 제정의 의미

한국의 현대사는 자주와 민주를 염원하는 시민들이 일궈온 투쟁의 역사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열사․희생자들이 발생하였다. 그들은 분신, 투신, 자결 등의 방법으로 자신의 생명을 던지며 독재권력에 항거했으며,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이 열사․희생자들의 자결과 타살은 언제나 크건 작건 독재정권의 균열과 위기를 초래하기 마련이었다. 민주화운동 역시 그런 죽음을 계기로 고양되어 쉼 없이 전진할 수 있었기에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열사․희생자들은 그에 정당한 대우를 받기는 커녕 오히려 빨갱이․범법자로 낙인찍혀 있었다. 반면 반민주세력과 독재권력에 기생했던 범죄자들은 명백한 반민족적, 반인륜적 행위를 자행하면서도 법에 의한 처벌이나 역사의 단죄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굴절된 현대사에서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등에관한법’과 ‘의문사진상규명을위한특별법’을 제정하여 열사․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어둠 속에 묻혀 있었던 의문사의 진상을 밝히는 작업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먼저, 처음으로 약한 수준에서나마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민주화운동으로 인한 피해를 부족하지만 일부분이나마 보상할 수 있다. 

세 번째로는 의문사의 진실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재발방지조치를 취하는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 

네 번째로 이후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든든히 만드는데 기여함과 아울러 국가적 차원의 기념사업으로 진전시켜나갈 수 있다.


2. 법 제정 경과 

이 두 법의 제정과 시행은 '국민의 정부'라 불리웠던 김대중 정권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다. 

김대중 정권에게 보냈던 국민들의 많은 기대 속에는 이번에야말로 열사․희생자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수 십 년간 감춰져 왔던 의문의 죽음의 진상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는 유가족들과 추모단체들의 염원도 포함되었고 이 염원은 투쟁으로 이어졌다.

법제정을 위한 출발이었던 투쟁선포식 (서울역)

1998년 4월 24일부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협)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이하 추모연대)는 서울역에서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캠페인에서는 법제정의 의의를 홍보하고 법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진행되었는데 이것이 '의문사진상규명을위한특별법'과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에관한법'을 제정하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이 캠페인은 9월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진행되었으며, 수많은 시민들의 서명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9월 1일, '민족민주열사 명예회복과 의문의 죽음 진상규명을 위한 98년도 2차 학술회의'에서 두 가지 법의 시안이 발표됐다.

뒤이어 9월 15일에는 특별법 제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두 법의 제정을 국회에 청원함으로써 법제정을 위한 큰 걸음을 내딛게 된다. 게다가 유가협과 추모연대 대표가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면담을 갖고 특별법 제정을 약속받으면서 법 제정이 쉽게 진행될 듯 보였다. 

하지만 국회는 개원만 해놓고 민생은 뒤로 한 채 밥그릇 싸움에 정신이 없었다. 

결국 유가협과 추모연대는 더이 상 미룰 수 없다는 각오로 1998년 11월 4일부터 국회 앞 천막 농성을 시작한다. 

국회 앞 천막농성장 모습

유가족들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 국회 앞과 각 당사 앞에서 피켓팅 시위를 벌였고, 1999년 3월 29일에는 의문사 유가족들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의문사진상규명특별법’ 제정 요구하며 삭발식까지 진행했다.  

유가족들의 노력에 힘잆어 1999년 12월 28일 두 개의 법안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유가족들은 12월 30일, 천막농성 422일이 되던 날 해단식을 치렀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두 법의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시민사회단체의 투쟁은 계속됐다. 이 싸움은 두 법이 시행되고 있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99년을 맞이하여 진행된 법 제정 촉구 기자회견


3. 두 법의 시행

1)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이하 보상심의위원회)는 2002년 8월에 제2기 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민주화운동관련자 심사와 보상금 지급 등을 하고 있다. 

그동안 보상심위원회는 민주화운동의 개념과 그 역사적 시기, 대상 등을 두고 민간단체와 의견 충돌을 빚어왔다. 이런 의견충돌은 특히 노동운동과 학원자주화운동에 대한 해석과 김영삼 정권에 대한 성격규정 등에서 첨예하게 나타났다. 이런 갈등은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의 위원회에 대한 여러 차례 점거농성 등을 통해 표출되기도 했다. 

보상심위원회에 의해 인정된 민주화운동관련자 중 사망자 명단

(가나다순/2004년 11월 8일 현재)

강경대 강민호 강상철 곽현정 권미경 권희정 길옥화 김경숙 김귀정 김기설 김기훈 김병곤 김병구 

김상진 김세진 김수경 김영균 김용권 김윤기 김종수 김준배 김철수 김학수 남태현 노수석 류재을

박동학 박래전 박선영 박성호 박승희 박영진 박응수 박인기 박종만 박종철 박진석 박태영 석광수

손석용 송광영 신용길 신장호 심광보 안종필 오범근 우종원 원태조 유재관 이경환 이길상 이대건

이상모 이상희 이석규 이영일 이재용 이재호 이정순 이철규 이태춘 이한열 장이기 장재완 장현구

전정배 전태일 정법영 정상순 정성희 조민기 조성만 조정식 진성일 천세용 최덕수 최  동 최응현

최태욱 표정두 한상근 한영현 한희철 홍기일 황보영국


2)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위원회)는 지난 2004년 6월 30일 2기 위원회 활동을 마감한 상태다. 현재 법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3기 위원회의 활동은 시작되지 못하고 있다. 

의문사위원회의 활동은 권위주의 정권시절 인권침해의 실상이 의문사 진상규명 활동을 통하여 밝혀짐으로써 과거사 청산에 기여하고, 향후 의문사 등 인권침해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기여했다.

하지만 조사권한이 미약하고, 조사 기간과 조사인력 부족 등으로 원활한 조사활동이 불가능했다(진상규명불능 사건 : 총24건 - 국정원 5, 법무부 1, 국방부 9, 경찰청 6, 불특정 3). 특히 관계기관의 비협조(국정원, 기무사 등 공안기관의 실지조사 거부 및 관련자료 미제출 등)로 인해 실체적 진실에 대한 접근이 불가능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1, 2기 의문사위원회는 전체 85건의 의문사 사건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구분

인정

기각

불능

취하

각하

사건 수

30

26

24

1

4

백분율

35%

31%

29%

1%

4%

특히 2기 의문사위원회는 1기 의문사위원회보다 더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다음과 같은 성과를 남겼다. 

· 군 부재자투표 관련 사망사건 은폐조작 : 정연관 사건

·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군 특별관리 : 이승삼․박성은․최우혁사건

· 80년대초 강제징집 관련 국가기관뿐 아니라 대학당국까지 민주화운동 탄압에 가담한 사실 : 김두황․최온순 사건

· 경찰등 정보기관의 불법적 미행과 감시․고문 등에 의한 학생운동 탄압 : 심오석․김성수 사건

· 국정원․경찰 등 정보기관의 불법적 수사와 연행․구금에 의한 인권 탄압 : 정은복․임태남 사건

· 권위주의 정권의 야당정치인 탄압 : 장준하 사건

· 70년대 폭정하에 불법 자행된 전향공작의 실태 : 최석기․박융서․손윤규 사건


4. 남은 과제

과거청산에 대한 국민들의 목소리는 날로 높아져만 가고 있고, 앞으로 진행될 국가차원의 과거청산 활동에 두 위원회의 활동이 거울이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두 위원회의 활동을 평가하여 그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더욱 완전한 과거청산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유가족들의 염원인 민주묘역을 조성하는 것도 남아있는 과제 중 하나이다. 전국 각지에 산재해있는 열사들의 묘를 한데 모아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만들어 후대에 길이 남겨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살아남은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글/ 이수연(사회복지 92)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추모(기념)단체 연대회의’ 상근 간사 활동



참고문헌: <노수석 백서 - 너는 먼저 강이 되었으니>, 2005,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