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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는 지난 9월 11일부터 9월 23일까지 쓰러지신 백남기 농민의 치료비를 모금했던 바 있습니다. 모금이 끝나고 이틀 뒤, 안타깝게도 백남기 농민께서는 영면하셨습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20년 전 노수석 열사의 죽음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20년간 반성이 없었던 국가폭력은 또다시 국민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더 이상 이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도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故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 기사원문: http://news1.kr/articles/?2788847 [백남기 부검논란] "아들 부검 깊이 후회"…연세대 노수석씨 부친 96년 시위진압 과정서 사망한 노수석 학생 父 인터뷰최루탄 흡입·구타 정황에도 부검서 "사인은 심장질환" 1..
노수석 열사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1996년 3월 29일 집회의 요구사항은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확보'였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요구사항이 1996년 봄, 개강과 함께 전체 학생운동 진영의 핵심 투쟁 사안이 되었는지를 정리해본다. ■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는 1995년 하반기 정국을 달구었던 5․18 학살책임자 처벌 투쟁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5․18 책임자 사법 처리 공소시효 만료가 다가오자 이에 대한 법리논쟁이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게다가 1995년 7월 18일 검찰에서 5․18 피고소, 고발인 58명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이 발표되자 학살자 처벌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가 촉발되었다. 7월 31일 고려대 교수 131명의 '5․18 특별법 제..
※2015년 11월 26일 [민중의소리]에 기고된 칼럼입니다.※기사원문: http://www.vop.co.kr/A00000963364.html - 2015.11.26.[기고] YS는 대학생 노수석의 죽음을 기억할까오래된 정객(政客)의 죽음 앞에 부쳐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권현준 부회장 김영삼 전 대통령이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 앞에 나약한 한 인간으로, 병마와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 그에게 우선 애도를 표한다. 그리고 한 생명의 죽음 앞에서 벌어지는, 정략적 이해관계 속에 서로 자신이 고인의 정치적 적통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해프닝을 보게 된다. 정치 지도자가 아닌 마지막까지 정치의 손님인 정객(政客)으로 세상을 떠난 것에 더욱 애도를 표한다.이 글은 그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위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