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수석열사추모사업회
1996년 3월 29일노수석 열사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확보를 위한 서총련 결의대회’ 중 사망 ■ 1,500여명의 학생들이 함께한 ‘연세인 결의대회’연세대 민주광장에서 연세대 학생 1,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등록금 동결과 교육재정 확보, 대선자금 공개를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가 열렸다. 학생들은 집회 뒤 본관건물을 항의 방문해 총장실, 기획실장실, 교무처장실의 집기를 모두 들어내고 일방적 고지서 발송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학생들은 “앞으로 또 다른 면담과정을 통해 등록금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자”고 요구했다.등록금 동결과 교육재정 확보, 대선자금 공개를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 경찰의 ‘토끼몰이 진압작전’이 펼쳐진 종묘연세대생들은 본관 앞 항의 집회를 마친 뒤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와..
96년 초에서 3월 전까지■ 연세대, 재단의 어려움 이유로 등록금 16.38 % 인상연세대학교는 “연세우유 파동으로 재단의 재정상태가 현저하게 악화된 현재 상황에서, 대학원 중점대학 설립 대응자금과 소급 퇴직금 지급에 따른 지출액을 재단전입금만으로 부담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라며 “재학생 평균 16.38 %의 등록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며 등록금 인상 방침을 밝혔다.■ 1월 18일 연세대·고려대 총학생회 성명서 발표 고려대와 연세대 총학생회는 사립대 등록금 인상반대와 정부의 교육재정 확보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5·31 교육개혁 등 정부의 교육정책은 교육의 세계화와 대학의 경쟁력 제고에만 치우쳐 이에 따른 재정부담을 큰 폭의 등록금 인상을 통해 학생 및 학부모에게 전가하려 하고 있다”고 ..
노수석 열사를 죽음으로 이르게 한 1996년 3월 29일 집회의 요구사항은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확보'였다. 어떻게 이 두 가지 요구사항이 1996년 봄, 개강과 함께 전체 학생운동 진영의 핵심 투쟁 사안이 되었는지를 정리해본다. ■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는 1995년 하반기 정국을 달구었던 5․18 학살책임자 처벌 투쟁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5․18 책임자 사법 처리 공소시효 만료가 다가오자 이에 대한 법리논쟁이 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게다가 1995년 7월 18일 검찰에서 5․18 피고소, 고발인 58명에 대한 '공소권 없음' 결정이 발표되자 학살자 처벌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가 촉발되었다. 7월 31일 고려대 교수 131명의 '5․18 특별법 제..